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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다

War Elephant Howdah · 전쟁 코끼리의 탑승 구조물

하우다(howdah)는 전쟁 코끼리의 등에 얹어 사람이 그 안에 앉도록 만든 작은 누각의 한 자루로, 그 자체가 한 코끼리의 등에 자리잡은 한 자루의 작은 요새다. 두꺼운 나뭇판과 쇠띠로 짠 바닥에 가슴 높이의 옆벽을 둘러 두세 명에서 많게는 네 명의 궁수와 창병이 들어가 활과 창을 쏘았고, 옆벽에는 작은 화살 구멍을 뚫어 적의 화살을 비껴 흘리며 한쪽으로 사격할 수 있게 하였다. 같은 자리의 한 가지 큰 자랑은 높이로, 등 위에 얹힌 하우다는 땅에서 약 3~4m 높이에 자리잡아, 그 위의 궁수가 한꺼번에 적의 보병 진영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같은 누각이 왕과 장군의 자리이기도 하여, 한 자루의 하우다가 적군 한복판의 한 점으로 자리잡고, 그곳에서 깃발과 손짓으로 군 전체에 명을 내렸다. 무굴 황실과 라자스탄의 왕가는 한 자루의 호화로운 의식용 하우다(앙바리, ambari)를 따로 두어 금·은과 비단 휘장으로 꾸민 이동식 옥좌로도 썼으며, 그래서 같은 누각은 한 자루의 무기와 한 자루의 권좌 사이를 오갔다.

기원

코끼리의 등에 한 자루의 작은 누각을 얹은 일은 적어도 기원전 4세기 인도 마우리아의 전신인 마가다 왕국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26년 인더스 강 너머의 포로스 왕과 맞붙은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인도 군의 전투 코끼리가 처음으로 그리스의 자료에 또렷이 등장하였다. 다만 그 시기의 코끼리는 등 위에 가벼운 천이나 작은 통 정도만 올린 모습이었던 듯하며, 우리가 떠올리는 큰 누각의 한 자루는 헬레니즘 후기와 한니발 시대(기원전 3~2세기)의 카르타고·셀레우코스의 자료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인도에서는 같은 누각이 굽타 시대(4~6세기)와 그 뒤의 라자스탄 왕가, 그리고 16~18세기 무굴 제국에서 가장 큰 자리에 올라, 페르시아어 'haudaj(가마, 휘장 친 자리)'에서 자라난 'howdah'라는 말이 같은 자리에 굳어졌다. 동남아시아의 크메르, 시암, 버마의 왕가는 같은 시대에 자기 손길을 더해, 한 자루의 누각이 인도양 둘레의 모든 큰 야전에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외형·특징

  • 두꺼운 나뭇판과 쇠띠로 짠 바닥과 가슴 높이의 옆벽
  • 두세 명에서 많게는 네 명의 궁수·창병이 들어가는 안의 자리
  • 옆벽에 뚫린 작은 화살 구멍과 한쪽으로 사격할 수 있는 자리
  • 땅에서 약 3~4m 높이에서 적의 보병을 내려다보는 시야
  • 왕과 장군이 깃발과 손짓으로 군에 명을 내리는 지휘소의 자리
  • 금·은과 비단으로 꾸민 의식용 앙바리(ambari)의 한 갈래

스토리

하우다는 전쟁 코끼리의 등에 얹혀 한 자리에서 두 가지 일을 함께 했다. 하나는 높은 자리의 사격 진지로, 두세 명의 궁수가 하우다 안에 들어가 활을 당겨 같은 자리에서 적의 보병 진영 전체를 내려다보며 활을 쏘았으며, 같은 자리의 사거리는 평지의 보병에 견주어 한 발 더 멀리 닿았다. 다른 하나는 왕과 장군의 지휘소로, 무굴 황실의 아크바르(1556~1605)와 라자스탄 왕가의 라나가 한 자루의 큰 하우다에 올라 적군 한복판의 한 점으로 자리잡고, 그곳에서 깃발과 북소리로 휘하의 한 부대 한 부대에 명을 내렸다. 같은 자리의 큰 약점은 같은 누각이 적의 한 표식이 되었다는 것으로, 1565년 데칸의 탈리코타(Talikota) 전투에서 비자야나가라의 왕 알리야 라마 라야가 자기 하우다에서 끌어내려져 목숨을 잃은 일과, 1576년 할디가티(Haldighati) 전투에서 마하라나 프라타프가 자기 군마 체타크의 자리에서 적의 큰 코끼리의 하우다에 자리한 무굴의 장군 만 싱을 한 차례 노린 일은, 같은 누각이 야전의 한 표적이었음을 또렷이 보여 준다.

약점

하우다의 가장 큰 약점은 그 자리가 살아 있는 짐승의 등 위에 있다는 점이다. 같은 누각의 안에 두세 명이 들어가 무거운 활과 창을 휘두르고, 그 위에 작은 화살받이까지 두면, 한 자루의 짐이 100~200kg에 이르러 같은 코끼리의 더위와 지구를 크게 깎고, 짐승이 더 큰 폭으로 흔들리게 만든다. 또 코끼리가 한 차례 놀라거나 다쳐 자기 진영으로 거꾸로 돌진하면, 같은 누각의 안에 자리잡은 두세 명이 한꺼번에 자기 군의 한 자리에 큰 짐이 되었고, 1526년 파니파트에서 바부르가 적은 수의 화승총과 대포로 로디 술탄의 코끼리 부대를 흩어 놓을 때, 거꾸로 돌진하는 코끼리의 하우다에 자리한 자들이 한꺼번에 자기 진의 한 자리를 무너뜨린 일이 같은 자리의 자료에 적혀 있다. 게다가 같은 누각의 화려한 모양은 적의 한 표식이 되어, 적의 장수가 그 누각의 자리를 정확히 노리는 일이 잦았으며, 그래서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적지 않은 큰 전투에서 한 자루의 하우다 자리에서 왕이나 장군이 한 차례에 무너지는 일이 한 시대의 운명을 가르기도 하였다.

문화·역사적 의미

하우다는 한 자루의 무기와 한 자루의 권좌 사이를 오간 보기 드문 도구이며, 그래서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왕가의 정체와 권력이 한 자리에 모인 한 점의 상징이 되었다. 무굴 황실의 일대기 《아크바르나마》와 《아인-이-아크바리》에는 황제 아크바르가 한 자루의 큰 하우다에 올라 명을 내리는 장면이 곳곳에 자세히 그려져 있고, 같은 시대의 페르시아 화풍의 채색 사본에는 금과 은을 입힌 한 자루의 앙바리(ambari, 의식용 하우다)가 코끼리의 등에 자리잡고 황제와 왕자를 태운 모습이 정성껏 새겨져 있다. 라자스탄의 자이푸르 시티 팰리스 박물관, 비카네르의 주나가르 요새, 우다이푸르 시티 팰리스 박물관, 마이소르 궁전 박물관에는 16~19세기에 만들어진 호화로운 의식용 하우다가 다수 남아 있으며, 그 가운데 몇 자루는 오늘날에도 한 해의 큰 의식에 같은 자리에 다시 올라간다. 한편 영국 리즈의 로열 아머리스에 보존된 한 벌의 17세기 인도 코끼리 갑옷과 짝지어 한 자루의 같은 시대의 하우다가 함께 전시되어, 같은 한 마리의 짐승이 어떻게 한 자리의 갑옷과 한 자리의 누각을 함께 짊어졌는지를 한눈에 보여 준다.

대중문화 등장

하우다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사극·영화·게임에 한 자리의 권좌이자 한 자리의 야전 지휘소의 표식으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인도 영화 《조다 악바르(Jodhaa Akbar)》(2008)와 《바지라오 마스타니(Bajirao Mastani)》(2015), 《파드마바트(Padmaavat)》(2018)에는 한 자루의 호화로운 앙바리가 황제와 왕의 자리로 자세히 그려지며, BBC 사극 《엠파이어》(Empire, 2012)의 무굴 편에도 같은 모양이 나타난다. 시암과 버마의 사극에서는 1593년 나레수안 왕과 밍기 스와 왕자의 일대일 코끼리 결투가 가장 또렷이 그려지며, 영화 《영웅 나레수안(The Legend of King Naresuan)》(2007~2014) 연작이 그 한 자리를 자세히 다룬다. 전략 게임 《Total War: Rome II》와 《Civilization VI》, 《Age of Empires II》에는 같은 누각을 얹은 코끼리 부대가 인도·카르타고·아라비아의 표식으로 등장하며, 액션 게임 《Assassin's Creed Odyssey》의 동방 자료편에도 한 자리의 같은 모양이 모습을 보인다.

재미있는 사실

  • 하우다(howdah)라는 말은 페르시아어 'haudaj(가마, 휘장 친 자리)'에서 자라난 것으로 보며, 그래서 같은 말은 본디 인도뿐 아니라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가마와 한 줄에 닿아 있고, 한 자리의 군사 도구가 그 이전부터 있던 한 자리의 의식의 자리에서 비롯하였음을 그 말 자체가 보여 준다.
  • 1565년 데칸의 탈리코타(Talikota) 전투에서 비자야나가라 제국의 왕 알리야 라마 라야가 자기 하우다에서 끌어내려져 목숨을 잃은 일과, 1526년 파니파트에서 바부르의 화승총에 놀란 로디 술탄의 코끼리들이 자기 진영으로 거꾸로 돌진하며 자기 하우다의 자리한 자들을 함께 무너뜨린 일은, 같은 누각이 한 야전의 한 표적이자 위험한 자리였음을 함께 보여 준다.
  • 영국 리즈의 로열 아머리스(Royal Armouries)에 보존된 한 벌의 17세기 인도 코끼리 갑옷과 함께 같은 시대의 한 자루의 하우다가 짝지어 전시되어 있어, 한 마리의 짐승이 어떻게 한 자리의 갑옷과 한 자리의 누각을 함께 짊어졌는지를 한눈에 보여 주는 가장 또렷한 자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