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라
Mummy · 붕대 감긴 망자 — 무덤을 지키는 저주받은 시체
미라(영어 mummy, 페르시아어 mūmiya '역청'에서 유래)는 방부 처리되어 붕대로 감긴 채 무덤에서 깨어나 산 자에게 복수와 저주를 내리는 언데드이다. 도상학적 원형은 고대 이집트의 미라 제작과 사후 부활 신앙으로, 기원전 3000년경 고왕국 시대부터 70일간의 정교한 방부 의례 — 뇌 적출(콧구멍 통과), 내장의 카노푸스 항아리 분리(이엠세티·하피·두아무테프·케베센누에프, 호루스의 네 아들), 나트론 건조, 아마포 붕대 감기, 사자의 서 부적 삽입 — 가 정착되었다. 헤로도토스(『역사』 제2권, 기원전 440년경)가 미라 제작 과정을 가장 상세히 기록했다. 1922년 11월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기원전 1341~1323년경) 무덤(KV62)을 발굴한 사건과 후원자 카나본 경(Lord Carnarvon)의 1923년 4월 사망이 '파라오의 저주' 전설을 세계화했고, 1932년 칼 프로인트 감독의 유니버설 호러 영화 『미라』(Karl Freund 감독, 보리스 칼로프 주연의 임호테프)가 되살아나 복수하는 미라 도상을 영화 정전으로 확립했다.
기원
도상학적 기원은 고대 이집트의 미라 제작과 사후 부활 신앙이다. 기원전 3000년경 고왕국 시대부터 제18왕조(기원전 1550~1295년경) 신왕국 시대를 거치며 정교화된 70일간의 방부 의례가 정착되었다 — ① 뇌를 콧구멍으로 갈고리로 적출 ② 옆구리 절개로 내장 적출하여 호루스의 네 아들 이름이 새겨진 카노푸스 항아리에 분리 보관(이엠세티는 간, 하피는 폐, 두아무테프는 위, 케베센누에프는 창자) ③ 시신을 나트론(천연 탄산수소나트륨)에 40일간 건조 ④ 송진과 향유 도포 ⑤ 아마포 붕대를 수십 겹 감으며 사자의 서 부적 삽입 ⑥ 자칼 머리 신 아누비스 가면을 쓴 사제의 입 열기 의식. 헤로도토스가 『역사』 제2권(기원전 440년경)에 세 가지 가격대의 미라 제작 등급을 기록했고, 사자의 서(『페르 엠 헤루』) 125장 영혼의 무게 재기 장면이 사후 심판의 핵심 도상이다. 1922년 하워드 카터의 투탕카멘 무덤 발굴과 1923년 카나본 경 사망 보도가 '파라오의 저주' 현대 전설을 세계화했다.
외형·특징
- 나트론 건조와 아마포 붕대를 수십 겹 감아 만든 방부 처리된 시체
- 무덤·부장품 침범자에 대한 저주(이집트학에서는 실제 사례 없음, 영화·소설의 산물)
-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추격 — 칼 프로인트 1932년 영화의 결정적 도상
- 모래·곤충(스카라베)·역병(열병)을 부림 — 1999년 스티븐 소머즈 영화의 결정적 도상
- 심장 적출 후 카노푸스 항아리에 분리된 내장의 보존
- 되살아나면 사랑한 여인의 환생을 찾아 헤매는 비극적 동기
스토리
고전 미라 호러는 1903년 브램 스토커(『드라큘라』 저자)의 『칠성의 보석』(The Jewel of Seven Stars)이 출발점이다 — 이집트 여왕 테라의 미라가 영국으로 옮겨져 환생을 시도하는 줄거리가 미라 문학 정전을 확립했다. 1932년 12월 22일 유니버설 픽처스의 『미라』(Karl Freund 감독, 보리스 칼로프 분 임호테프)가 영화 정전을 확립했다 — 4천 년 전 산 채로 매장된 사제 임호테프가 깨어나 환생한 연인 안크-에스-엔-아멘을 찾는 줄거리가 후속 영화의 원형이 되었다. 1959년 해머 필름 프로덕션의 『미라』(테렌스 피셔 감독, 크리스토퍼 리 분)가 1950년대 영국 호러 영화의 부흥을 이끌었다. 1999년 5월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미라』(아놀드 보슬루 분 임호테프, 브렌든 프레이저 분 릭 오코넬)가 미라를 모래 폭풍·스카라베 군단을 부리는 거대한 위협으로 재정의하며 전 세계 4억 1500만 달러 흥행을 기록했고, 2001년 『미라 리턴즈』, 2008년 『미라 3: 황제의 무덤』이 후속작이다. 2017년 알렉스 커츠먼 감독의 유니버설 다크 유니버스 리부트 『미라』(소피아 부텔라 분 아흐마넷, 톰 크루즈 주연)가 여성 미라 주인공을 시도했다.
약점
미라의 약점은 ① 마른 몸으로 인한 화재 취약성 — 수천 년 건조된 아마포 붕대와 시체가 즉시 점화되어 완전 소멸 ② 저주의 근원 파괴 — 부적(스카라베·앙크 십자가·호루스의 눈)이나 카노푸스 항아리(내장 보존 용기) 파괴 시 부활 능력 상실 ③ 사자의 서(『페르 엠 헤루』) 주문 역창 — 깨운 주문을 거꾸로 외우면 다시 잠듦 ④ 황금 책(Book of Amun-Ra) 같은 신성한 경전으로 봉인 가능 — 1999년 스티븐 소머즈 영화의 정전. 1932년 칼 프로인트 영화에서 임호테프는 이시스의 부적을 잃자 즉시 4천 년치 풍화로 무너졌고, 1999년 영화의 임호테프는 마지막에 황금 책의 봉인 주문으로 다시 죽음의 세계로 끌려갔다. 고대 이집트의 입 열기 의식(opening of the mouth)이 미라를 깨우는 의례라면, 그 역의례가 약점이다.
문화·역사적 의미
미라는 단순한 호러 도상이 아니라 19~20세기 이집트학(Egyptology)·식민주의·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과 1822년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의 로제타석 해독이 이집트학을 학문으로 정립하면서 영국·프랑스·독일의 무덤 발굴 경쟁이 본격화했다. 1922년 하워드 카터의 투탕카멘 무덤 발굴(11월 4일)과 1923년 4월 카나본 경의 모기 물림 패혈증 사망이 영국 신문 데일리 메일·뉴욕 타임스에 '파라오의 저주'로 선정적으로 보도되며 미라 호러의 대중적 토대가 되었다 — 학술적으로 카나본 사망과 무덤 발굴의 인과 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으나 신문 보도가 도상으로 굳어졌다. 미라 영화는 1932년 유니버설 픽처스의 골든 에이지 호러(드라큘라·프랑켄슈타인·늑대인간·미라)의 한 축으로 정착했고,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비평(1978년 『오리엔탈리즘』)이 이집트 미라 도상을 서구의 동방 타자화의 전형 사례로 분석했다. 영국 박물관과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미라 전시 윤리 논쟁이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대중문화 등장
헤로도토스 『역사』 제2권 기원전 440년경 — 미라 제작 과정의 최초 상세 기록1922년 11월 4일 하워드 카터 투탕카멘 무덤 발굴 — 파라오의 저주 현대 전설의 기원1923년 4월 5일 카나본 경 사망 — '파라오의 저주' 신문 보도 폭발테오필 고티에 『미라의 발』 1840년, 『미라 로맨스』 1857년 — 미라 문학의 낭만주의적 출발아서 코난 도일 「249번 사물함」 1892년 — 미라 호러의 단편 정전브램 스토커 『칠성의 보석』 1903년 — 미라 소설의 영국 빅토리아조 정전칼 프로인트 감독 『미라』 1932년 — 임호테프 미라 영화의 영화 정전테렌스 피셔 감독 『미라』 1959년 — 해머 호러의 영국 미라 영화스티븐 소머즈 감독 『미라』 1999년 — 모래 폭풍·스카라베 미라 도상의 세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