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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온

Morion · 스페인 정복자의 볏 달린 투구

모리온(Morion, 스페인어 morrion)은 16~17세기 유럽에서 자라난 개방형 전투 투구로, 머리 한가운데 높이 솟은 볏(comb)과 앞뒤로 뾰족하게 솟은 넓은 챙이 만드는 독특한 모양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얼굴 앞이 완전히 트여 있어 시야와 호흡, 청각이 막혀 있는 밀폐형 투구보다 훨씬 좋고, 행군과 야전이 길어지는 16세기 군대의 운용에 잘 맞았다. 높은 중앙 볏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위에서 내리치는 검과 도리깨의 일격을 옆으로 흘려 내는 구조적 보강재이며, 넓은 챙은 위에서 떨어지는 화살과 돌을 막아 어깨와 목을 가렸다. 비교적 간단한 모양 덕분에 대량으로 두드려 만들 수 있어, 스페인의 테르시오 보병의 표준 머리장비가 되었고, 그 뒤 신대륙 식민지 부대와 유럽 의장대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바티칸의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가 광택을 낸 모리온을 의례용으로 쓴다.

기원

모리온의 기원은 16세기 초의 카스티야에 두며, 그 이름은 둥근 머리·언덕을 뜻하는 스페인어 'morro'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많다(다만 그 어원은 학계에서 단일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처음에는 볏이 낮은 카바세트(cabasset) 형태에서 출발하였으며, 1540년대 무렵에 두꺼운 중앙 볏을 높이 올린 '콤 모리온'이 자리를 잡고 곧 스페인 군과 신성 로마 제국 군의 표준이 되었다. 흔히 1519~21년 에르난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과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페루 정복 때 정복자들이 이 투구를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그 시기의 정복자들은 그 이전의 챙 넓은 켓틀해트(kettle hat)와 살라데(sallet)를 주로 쓰고 있었고, 우리가 그리는 '높은 볏의 모리온'은 그보다 한 세대 뒤인 16세기 중반부터 보편화된 것이다. 그래서 모리온은 멕시코·페루 정복기 자체의 투구라기보다는, 그 이후 코로나도의 북아메리카 원정과 펠리페 2세 시대 테르시오 보병의 시대를 대표하는 투구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외형·특징

  • 머리 한가운데 높이 솟은 볏(comb)과 앞뒤로 뾰족한 넓은 챙
  • 얼굴이 완전히 트인 구조로 우수한 시야·호흡·청각
  • 스페인 테르시오 보병의 표준 투구
  • 중앙 볏이 위에서 내리치는 일격을 옆으로 흘려 내는 보강재
  • 넓은 챙이 화살·돌·낙하물로부터 어깨와 목을 가림
  • 두드려 찍어 내기 쉬운 구조로 대량 생산에 적합

스토리

모리온은 16~17세기 유럽 보병의 가장 흔한 머리 장비였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스페인의 테르시오에서 가장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하였다. 파이크(긴 창)를 든 보병과 화승총·머스킷을 든 사수가 한 부대를 이루는 테르시오에서, 파이크병은 흉갑·등갑과 함께 콤 모리온을 머리에 얹어 정면 충돌과 위에서 내려치는 일격에 대비하였고, 사수는 같은 모리온이나 그 변형인 챙이 작은 카바세트를 써서 시야와 청각을 살렸다. 1540년대 이후 신대륙에서는 코로나도의 북아메리카 원정과 칠레·페루의 후속 정복 부대가 이 투구를 썼고, 카리브의 식민지 수비대도 18세기 초까지 모리온을 유지하였다. 유럽 본토에서는 17세기 중엽 30년 전쟁의 진행과 더불어 모리온 대신 챙이 둥근 비버 모자와 캐스킷(casquet)이 자리를 잡으면서 야전에서는 점차 물러났고, 그 뒤에는 의장대와 궁전 경비병의 의례용 머리장비로 모습이 바뀌었다.

약점

모리온의 가장 큰 약점은 얼굴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시야와 호흡을 살리기 위해 면갑(visor)을 두지 않은 구조라, 정면에서 들어오는 화살과 총탄, 검끝과 창끝에는 거의 보호가 없다. 챙이 위에서 내려오는 공격은 막아 주나, 측면 깊숙이 들어오는 베기에도 한계가 있어 두꺼운 가죽 깃의 안쪽 천(코이프)에 보완을 의지해야 했다. 1540년대 콤 모리온이 자리잡은 무렵에는 화승총의 보급으로 어차피 어떤 투구도 정면의 탄환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면이 트인 모리온은 머스킷의 탄을 비스듬히 맞으면 흘려 내지 못하고 그대로 꿰뚫리기 쉬웠다. 결국 17세기 중후반 들어 가벼운 비버 모자가 일반 보병의 머리장비를 대체하면서 모리온은 실전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그 뒤로는 의식의 자리에만 남았다.

문화·역사적 의미

모리온은 단순한 머리장비를 넘어 16~17세기 유럽 패권과 신대륙 정복의 시대를 상징하는 도상이 되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과 후일의 역사 회화에서 정복자와 테르시오 보병은 거의 예외 없이 광택을 낸 콤 모리온을 머리에 얹고 그려졌으며, 이 인상이 지금까지도 '정복자=모리온'이라는 정형을 굳혔다. 한편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창설한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는 16세기에 자리잡은 의장의 일부로 모리온을 받아들였고, 오늘날까지도 바티칸 곳곳에서 광택을 낸 모리온을 든 그들의 모습이 가장 잘 알려진 모리온의 현역 모습이다. 빈의 미술사 박물관, 뮌헨의 레지덴츠 갑주 박물관, 마드리드의 왕립 갑주 박물관과 리즈의 로열 아머리스에는 16~17세기에 만들어진 호화로운 모리온이 다수 남아 그 솜씨를 전한다.

대중문화 등장

모리온은 신대륙 정복과 16~17세기 스페인을 다루는 거의 모든 영화·사극·게임에 한결같이 등장한다.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1972)에서 페루의 정글을 따라 내려가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광택을 낸 모리온은 가장 인상 깊은 시각의 상징 가운데 하나이며, 멜 깁슨이 만든 《아포칼립토》(2006)의 마지막 장면에 짧게 보이는 모리온도 비슷한 무게를 지닌다. 전략 게임 《Age of Empires II》와 《Empire: Total War》, 또 《Europa Universalis IV》는 스페인 군의 표식으로 모리온을 곳곳에 새겨 두었고, 《Assassin's Creed II》와 《Assassin's Creed IV: Black Flag》에서도 16~17세기 스페인 호위병의 머리장비로 자주 그려진다. 다만 영화는 흔히 모리온을 1519년 코르테스 시대에도 쓰이는 것처럼 그려, 역사상 한 세대의 시차를 보지 않는 과장이 자주 보인다.

재미있는 사실

  • 모리온의 이름은 둥근 머리나 언덕을 뜻하는 스페인어 'morro'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많으나, 어원의 자취는 학계에서 단일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다.
  • 흔히 코르테스(1519~21년)와 피사로(1532년) 같은 신대륙 초기 정복자들이 이 투구를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그 시기의 정복자들은 그 이전의 켓틀해트와 살라데를 주로 쓰고 있었고, 높은 볏의 모리온은 1540년대 이후에 자리잡았다.
  •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는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창설한 이래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광택을 낸 모리온을 의장의 일부로 유지하고 있어 바티칸은 16세기 투구가 현역으로 남은 보기 드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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