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타 갑옷
Camel Armor · 전투 낙타의 보호 장비
낙타 갑옷은 중동·북아프리카·인도 사막을 누비는 낙타 기병의 짐승을 가리기 위해 만든 갑옷으로, 같은 자리의 말갑옷에 비해 작고 가벼우며 결이 트인 구조가 가장 큰 특징이다. 가죽과 펠트, 작은 사슬과 작은 철판을 짝지어 가슴과 길쭉한 목, 옆구리를 가리는 몇 장의 면으로 짜였으며, 두 개의 큰 혹이 위로 솟아 있는 낙타의 등은 자연히 가릴 수 없는 자리로 두어, 그 위에 짐과 사람의 자리(안장과 작은 누각)를 얹는 자리로 삼았다. 말의 갑옷이 한 면을 단단히 감싸는 데 뜻을 두었다면, 낙타 갑옷은 사막의 뜨거운 햇볕과 모래 안에서 짐승이 숨을 쉴 길을 살리는 데 더 큰 무게를 두었으며, 그래서 사슬과 작은 판의 사이로 바람이 통하는 트인 결이 흔했다. 무엇보다 낙타의 몸 자체가 한 자루의 무기로 쓰였으니, 그 짐승 특유의 냄새가 적의 말을 흔들어 줄을 무너뜨리는 일이 잦았기에, 낙타 갑옷은 짐승의 무기를 가장 오래 살리는 도구로 자리잡았다.
기원
전쟁에 낙타를 끌고 나간 일은 적어도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 왕 살만에세르 3세의 부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원전 547년 무렵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과 맞붙은 팀브라 전투에서 짐을 나르던 낙타를 한 줄로 세워 적의 기병의 앞에 내보냈고, 그 자리의 말이 낙타의 냄새를 견디지 못해 줄을 무너뜨렸다고 적어 두었다. 한편 본격의 한 벌 갑옷을 두른 낙타가 자주 그려진 자리는 7세기 이후 이슬람의 사막 군사의 시대로, 사산조 페르시아의 잔재를 흡수한 우마이야와 아바스의 군대에서 낙타 기병이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인도에서는 무굴 제국과 라지푸트의 군대에 낙타 기병의 자리가 굳었고, 16~18세기에는 라자스탄의 비카네르(Bikaner)와 자이살메르(Jaisalmer)에서 한 벌의 사슬·판 낙타 갑옷이 다듬어졌다. 17~19세기에는 같은 낙타의 등에 작은 대포(잠부락, zamburak)를 얹어 한 마리가 곧 한 자리의 대포대가 되는 모양도 자리잡았다.
외형·특징
- 가슴, 목, 옆구리를 가리는 몇 장의 면으로 짜인 짧은 한 벌
- 혹이 솟은 등 자리를 비워 두고 그 위에 안장과 짐을 얹는 운용
- 사슬과 작은 판 사이로 바람이 통하는 트인 결
- 라자스탄의 비카네르와 자이살메르에서 다듬어진 인도 식 사슬·판 갑옷
- 낙타의 체취가 적의 말을 흔드는 짐승의 한 무기로 함께 쓰임
- 후일 잠부락(zamburak) 시대에는 같은 낙타에 작은 대포를 얹는 자리로 자라남
스토리
낙타 갑옷은 사막에서 한 자루의 짐승 무기를 한 자리에서 가장 오래 살려 두는 도구로 쓰였다. 가슴·목·옆구리의 가림이 앞에서 들어오는 화살과 창의 첫 일격을 받아 내고, 같은 짐승이 적의 기마와 마주치면, 말이 낙타의 냄새를 견디지 못해 줄을 무너뜨리는 일이 잦았기에 같은 자리에서 짐승 자체가 무기가 되었다. 키루스 대왕의 팀브라 전투에서 같은 일이 처음 사료에 또렷이 적혔으며, 7세기 이슬람 정복기의 무으타와 야르무크의 전장에서도 낙타 부대가 사막의 광활한 자리에서 빠르게 적을 둘러싸는 자리에 서곤 하였다. 인도의 무굴 제국에서는 같은 낙타가 등에 한두 명의 화승총수를 태우고 라자스탄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빠른 정찰과 습격의 자리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습으로 자리잡았으며, 17~19세기에 들어 같은 등에 잠부락(작은 대포)을 얹는 모양이 자리잡으면서 낙타 갑옷은 짐승과 한 짝의 화기를 함께 보호하는 자리로 한 차례 더 자라났다.
약점
낙타 갑옷의 한계는 무엇보다 그 짐승의 몸 자체에서 비롯한다. 두 개의 큰 혹이 위로 솟아 있어 등의 한가운데가 자연히 빈 자리가 되며, 그래서 같은 자리는 안장과 짐을 얹는 자리로 두는 수밖에 없어, 등에서 내려오는 위의 일격에는 늘 약하다. 또 사막의 뜨거운 햇볕 속에서 짐승이 숨을 쉴 길을 살리려 결을 트게 짠 갑옷은, 같은 트인 자리로 들어오는 화살과 짧은 창에는 한 면 두꺼운 말갑옷보다 약하였다. 무엇보다 낙타는 말에 비해 발이 느리고, 한 번 놀라면 더 큰 폭으로 흔들리는 짐승이라, 적의 갑작스러운 일격이나 큰 소리에 무너지기 쉬웠다. 16세기 이후 화기가 자리잡으면서, 같은 자리의 굉음에 낙타가 도리어 자기 진영을 향해 흔들리는 일도 자주 일어났고, 무엇보다 한 벌의 낙타 갑옷은 한 마리의 몸에 맞춰 별도의 손길로 다듬어야 했기에 값이 매우 비쌌으며, 그래서 같은 갑옷은 늘 사막의 왕가와 부유한 도시 군주의 한 자리에만 머물러 일반의 보병에게는 잘 닿지 않았다.
문화·역사적 의미
낙타 갑옷은 사막에서 살아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 자리의 짐승을 한 자루의 무기로 끌어올린 자리이며, 그 모습은 같은 자리의 말의 갑옷이 차마 닿을 수 없었던 사막의 자리에 서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원전 547년 키루스 대왕이 팀브라 전투에서 낙타를 적의 기병의 앞에 내보내 리디아의 줄을 무너뜨렸다는 일을 가장 또렷이 전하며, 같은 일은 그 뒤 그리스와 로마의 자료에 여러 차례 다시 적혔다. 인도의 라자스탄에서는 비카네르와 자이살메르의 왕가가 한 세기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켰고, 같은 사막의 한 자리에 자라난 비카네르의 낙타 군단(Bikaner Camel Corps)은 19세기에는 영국령 인도군의 한 부대로 자리잡았다가 오늘날의 인도 국경 보안군의 한 자리로 이어진다. 영국 리즈의 로열 아머리스, 인도 비카네르의 주나가르 요새, 자이살메르의 사막 박물관과 뉴델리 국립 박물관에는 16~19세기의 사슬·판 낙타 갑옷이 다수 남아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등에 잠부락을 얹은 한 모양으로 남아 같은 자리의 한 세 짝을 함께 보여 준다.
대중문화 등장
낙타 갑옷은 사막의 사극·영화·게임에 사막 군사의 한 표식으로 곳곳에 등장한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 아랍의 봉기 부대를 이끌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 행렬, 《벤허》(1959)의 안디옥 시장 장면, 《왕국의 천국》(2005)과 《킹덤 오브 헤븐》의 살라딘 군대에 보이는 낙타가 그 가까운 친척이며, BBC 사극과 인도 영화 《조다 악바르》(2008), 《바지라오 마스타니》(2015)에는 라자스탄의 한 벌 사슬·판 낙타 갑옷이 그대로 그려진다. 전략 게임 《Total War: Rome II》(아랍·파르티아의 낙타 기병), 《Civilization VI》(아라비아의 마믈루크와 사라센), 《Age of Empires II》(사라센과 인도의 낙타병)에는 같은 자리의 낙타 갑옷이 각 진영의 표식으로 두어졌다. 다만 영화는 흔히 낙타에 한 벌 갑옷이 얹힌 모양을 너무 화려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아, 본디의 사막 갑옷은 가볍고 결이 트여 있다는 사실을 흐려 놓곤 한다.
재미있는 사실
-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원전 547년 무렵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과 맞붙은 팀브라 전투에서 짐을 나르던 낙타를 한 줄로 세워 적의 기병의 앞에 내보냈고, 그 자리의 말이 낙타의 냄새를 견디지 못해 줄을 무너뜨려 페르시아가 승리하였다고 적어 두어, 낙타가 한 자루의 짐승 무기로 쓰인 가장 오래된 사료가 된다.
- 라자스탄의 사막 도시 비카네르(Bikaner)의 왕가가 한 세기 넘게 키워 온 비카네르 낙타 군단(Bikaner Camel Corps)은 19세기 영국령 인도군의 한 부대로 자리잡았다가, 오늘날에는 인도의 국경 보안군(BSF)의 한 자리로 이어지며, 매년 인도 공화국 기념일의 행진에서 낙타 부대가 옛 갑옷의 자취를 두른 모습으로 행진한다.
- 17~19세기에는 낙타의 등에 작은 대포(잠부락, zamburak)를 얹어 한 마리의 낙타가 곧 한 자리의 움직이는 포대가 되는 모양이 페르시아·인도·중앙아시아에 자리잡았으며, 같은 시기의 낙타 갑옷은 짐승과 한 짝의 화기를 함께 보호하는 자리로 한 차례 더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