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튼 건틀릿
Mitten Gauntlet · 벙어리장갑형 금속 장갑
미튼 건틀릿(mitten gauntlet)은 14~15세기 유럽의 기사가 손에 끼던 금속 장갑의 한 갈래로, 엄지손가락만 따로 떼어 두고 네 손가락을 하나의 금속 껍데기 안에 묶어 둔 모양에서 이름을 얻었다. 같은 시대에 자라난 핑거 건틀릿이 다섯 손가락을 모두 따로 가린 데 비해, 미튼 건틀릿은 네 손가락을 한 면으로 덮어 마디 사이의 빈 자리가 거의 없도록 짜였고, 그래서 같은 한 면을 가리는 보호의 결은 핑거 건틀릿에 견주어 조금 더 두텁고 결이 끊이지 않는다. 만드는 손은 한 자리에서 비교적 적게 들어, 같은 한 벌의 값이 한층 가벼웠으며, 그래서 14세기 초의 한 벌 판금 갑옷이 갓 자리를 잡던 시기에는 거의 모든 기사가 같은 모양을 자기 손에 끼었다. 다섯 손가락이 따로 움직이는 정밀한 손놀림이 막히는 큰 단점에도 불구하고, 한 자루의 창과 폴악스, 도리깨처럼 잡는 자리만 분명하면 되는 무기에는 도리어 잘 맞아, 같은 모양은 15세기 후반까지 토너먼트의 한 자리에서 굳건히 살아남았다.
기원
미튼 건틀릿의 본격적인 모양은 14세기 초의 한 벌 판금 갑옷이 자라나던 자리에서 함께 자라났으며, 그 가장 이른 모습이 1300~1350년 무렵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자리잡은 모래시계형(hourglass) 건틀릿이다. 손목에서 손등으로 넓어졌다가 손가락 끝에서 다시 좁아지는 그 곡선이 마치 모래시계를 닮았다 하여 이런 이름을 얻었으며, 같은 모양은 한 면의 큰 판으로 네 손가락을 한꺼번에 덮는 미튼 식 짜임의 시작 자리에 든다. 14세기 후반에 자루의 검을 다섯 손가락이 따로 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면서 핑거 건틀릿이 함께 자라났고, 두 모양은 15세기 동안 한 시대를 같이 보냈으며, 같은 무렵 잉글랜드와 부르고뉴, 이탈리아의 갑주 공방이 두 모양을 모두 다듬어 보냈다. 16세기 토너먼트에서는 같은 미튼의 안쪽에 손가락이 풀리지 않도록 못으로 박은 '잠금 건틀릿(locking gauntlet)'이 자리를 잡았으며, 이 도구가 너무 유리해 영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몇몇 토너먼트는 그 사용을 금하기까지 하였다.
외형·특징
- 엄지손가락만 따로 떨어진 네 손가락 한 자리의 금속 껍데기
- 마디 사이의 빈 자리가 적은 끊이지 않는 보호의 결
- 핑거 건틀릿에 견주어 만드는 손이 적게 들어 한층 싼 값
- 1300~1350년 무렵의 모래시계형(hourglass) 건틀릿이 가장 이른 모습
- 창·폴악스·도리깨처럼 잡는 자리만 분명한 무기에 잘 맞음
- 토너먼트의 '잠금 건틀릿'으로 자리잡은 후일의 변형
스토리
미튼 건틀릿은 14~15세기 한 벌 판금 갑옷의 마지막 한 점으로 손에 끼워졌다. 안에는 가죽 장갑을 끼고 그 위에 미튼 건틀릿을 씌운 뒤, 안쪽의 가죽 줄로 손목과 손등에 단단히 묶었다. 같은 한 짝으로 한 자루의 창을 잡으면 다섯 손가락이 한 면으로 모여 잡히는 힘이 크게 자라고, 같은 모양을 그대로 양손에 끼고 두 손으로 잡는 폴악스나 도리깨를 잡으면 손에 자국이 나도록 단단하게 잡을 수 있었다. 1346년 크레시(Crecy) 전투와 1356년 푸아티에 전투의 잉글랜드 기사, 1415년 아쟁쿠르의 양 진영의 기사들이 든 손은 거의 모두 같은 모래시계형의 미튼이었다. 토너먼트에서는 같은 미튼의 안쪽에 손가락이 자루에서 풀리지 않도록 못과 끈으로 잠가 둔 '잠금 건틀릿'이 마상창시합(주스트)에서 자리잡았으며, 한 손이 자루를 놓치는 일을 막아 결투의 흐름을 한 호흡으로 끌어가게 하였다.
약점
미튼 건틀릿의 가장 큰 약점은 정밀한 손놀림을 막는다는 점이다. 다섯 손가락이 따로 굽혀지지 않으므로, 검의 자루를 잡는 손가락의 위치를 한 호흡 안에 바꾸는 일, 활시위를 손가락 끝으로 끌어당기는 일, 또는 단검의 손잡이를 손바닥과 손가락 안쪽으로 가볍게 굴리는 일이 모두 막힌다. 그래서 단검과 한 손 검의 정밀한 검술에 의지하는 기사는 같은 모양을 꺼리고 핑거 건틀릿을 택하는 일이 잦았다. 또 한 면의 큰 판이 네 손가락을 한 자리에 묶어 두므로, 비가 새거나 손이 땀에 젖으면 안의 가죽이 미끄러져 자루를 잡는 힘이 도리어 흩어졌고, 같은 안쪽의 가죽 줄이 풀리면 한 짝의 보호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지기 쉬웠다. 그래서 15세기 후반 한 손 검과 단검의 시대로 갈수록 같은 모양은 토너먼트의 자리로 차츰 옮겨 갔고, 야전의 한 짝 자리는 핑거 건틀릿에 내주었다.
문화·역사적 의미
미튼 건틀릿은 14세기 유럽이 처음 한 벌 판금 갑옷을 자기 손에 새기던 자리의 가장 또렷한 작품이며, 1376년 칸터베리 대성당의 흑태자(에드워드) 무덤에 놓인 그의 갑옷 한 벌의 손에도 같은 모래시계형 미튼이 끼워져 있다. 잉글랜드 왕가의 무덤 조각, 프랑스의 채색 사본, 알프스 산기슭 추르부르크(Churburg) 성의 무기고에 보존된 14세기 미튼 건틀릿은 같은 도구가 한 시대 기사의 손에 어떻게 안기었는지를 가장 또렷이 보여 준다. 한편 같은 갑주 공방의 솜씨가 무기를 떠나 우리 일상의 말에도 닿아, 영어에서 'gauntlet'은 오늘날에도 '한 손에 든 도전의 한 짝'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며, '도전을 던지다(throw down the gauntlet)'와 '받아들이다(take up the gauntlet)'는 같은 미튼 건틀릿을 발 아래로 던지던 옛 기사의 한 동작에서 비롯한 표현이다. 17세기 토너먼트가 차츰 식고 한 벌의 갑옷이 의식의 한 자리로 옮겨 가면서, 같은 미튼도 야전의 무기에서 박물관의 한 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대중문화 등장
미튼 건틀릿은 14~15세기 서유럽을 다루는 영화·사극·게임의 기사 손에 한결같이 끼워져 있다. 영화 《브레이브하트》(1995)와 《잔 다르크》(1999)의 기사들이 든 손, 《로빈 후드》(2010)의 사자심왕 리처드와 그 휘하의 손에는 같은 모래시계형 미튼이 끼워져 있고, 《킹덤 오브 헤븐》(2005)의 십자군 기사 일부는 한 손에 같은 모양을 끼고 있다. 액션 RPG 《Kingdom Come: Deliverance》(15세기 보헤미아가 배경)는 미튼 건틀릿과 핑거 건틀릿을 각각 다른 한 짝으로 나누어 두어, 사용자가 잡는 무기에 따라 한 쪽을 고르는 묘미를 두었으며, 《Mount & Blade II: Bannerlord》와 《For Honor》는 같은 모양을 14세기 갑주의 한 표식으로 두었다. 다만 영화는 흔히 미튼과 핑거 두 모양을 한 데 묶어 그리는 일이 잦아, 두 모양의 가는 차이가 흐려지는 일이 적지 않다.
재미있는 사실
- 1376년 잉글랜드의 흑태자 에드워드의 무덤이 자리잡은 캔터베리 대성당에는 그의 한 벌 갑옷이 함께 놓여 있는데, 그 손에 끼워진 모래시계형 미튼 건틀릿은 오늘날까지 14세기 후반 잉글랜드 기사의 한 손을 가장 또렷이 보여 주는 자료다.
- 16세기 토너먼트에서 한 손이 창의 자루를 놓치지 않도록 미튼의 안쪽에 손가락을 못과 끈으로 잠가 둔 '잠금 건틀릿(locking gauntlet)'이 자리잡았으나, 결투의 균형을 한쪽으로 너무 기울인다는 이유로 영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몇몇 토너먼트는 그 사용을 금하기까지 하였다.
- 영어의 'gauntlet'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한 손에 든 도전의 한 짝'을 가리키며, '도전을 던지다(throw down the gauntlet)'와 '받아들이다(take up the gauntlet)' 같은 표현은 한 짝의 미튼 건틀릿을 발 아래로 던지던 중세 기사의 한 동작에서 그대로 비롯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