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멧
Armet · 15세기 이탈리아의 밀착형 투구
아멧(Armet)은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자라난 밀착형 전투 투구로, 머리의 굴곡에 그대로 맞아 들어가는 유선형의 둥근 정수리와, 양쪽에서 안쪽으로 열고 닫는 두 짝의 뺨 보호대가 한 자루의 갑옷처럼 짜여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전 세대의 바시넷이 사슬 카메일을 목 둘레에 두르고 있던 것과 달리, 아멧은 두 짝의 뺨 보호대가 턱 아래에서 만나며 한 점으로 잠겨, 사슬을 끼우지 않고도 머리와 목의 옆을 한 면의 판으로 가린다. 앞면에는 위로 들어 올리는 바이저(면갑)가 힌지로 달려 있어, 전투 중에는 좁은 시야 구멍 한 줄만 남기고 얼굴을 가리고, 진영의 휴식 중에는 같은 바이저를 올려 시야와 호흡을 자유롭게 풀어 주었다.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한 벌 판금 갑옷의 표준 투구로 자리잡았으며, 밀라노의 미사글리아(Missaglia) 공방을 비롯한 북부 이탈리아의 갑주 명장들이 다듬어 낸 모양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르네상스 기사의 가장 또렷한 머리장비가 되었다.
기원
아멧의 기원은 14세기 후반 이탈리아 북부의 바시넷에 두며, 그 바시넷의 뾰족한 정수리가 차츰 둥글어지고, 목 둘레의 사슬 카메일이 옆으로 열리는 두 짝의 뺨 보호대로 바뀌면서, 15세기 초의 한 새로운 모양으로 다듬어졌다. 본격으로 '아멧'이라 부를 만한 한 형태가 자리잡은 자리는 1420~1440년대 밀라노의 미사글리아 공방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많으며, 이후 같은 모양이 이탈리아 전역과 알프스 너머 부르고뉴, 프랑스, 잉글랜드로 퍼져 나갔다. 알프스 너머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챙이 있는 살라데와 턱가리개 베버(bevor)를 합한 다른 한 줄이 따로 자라났기 때문에, 아멧은 한동안 '이탈리아 식 투구'로 비쳤다. 15세기 말 막시밀리안 1세의 시대에는 같은 모양이 더욱 다듬어져 더욱 둥글고 매끈한 표면을 가지게 되었고, 16세기 중엽에 이르러 클로즈 헬멧(close helmet)이 같은 자리를 차지하며 본디의 아멧은 차츰 물러났다.
외형·특징
- 머리의 굴곡에 맞춘 유선형 둥근 정수리
- 양쪽에서 안쪽으로 열고 닫는 두 짝의 뺨 보호대
- 위로 들어 올리는 힌지식 바이저(면갑)
- 두 짝이 턱 아래에서 만나 한 점으로 잠그는 잠금 구조
- 뒤에 달린 둥근 원반 론델(rondel)이 끈과 잠금을 가림
- 밀라노 미사글리아 공방을 비롯한 이탈리아 갑주 명장의 최고 솜씨
스토리
아멧은 15세기 이탈리아의 한 벌 판금 갑옷(white harness)의 머리장비로 자리잡아, 전장과 토너먼트의 양쪽에서 두루 쓰였다. 안에는 얇은 가죽 모자와 두꺼운 누비옷 코이프를 얹어 충격을 흩었고, 그 위에 아멧을 씌운 다음, 양쪽의 뺨 보호대를 닫고 턱 아래의 잠금쇠를 끼워 머리에 한 자루의 갑옷처럼 고정하였다. 전투 중에는 위로 올린 바이저를 내려 좁은 시야 구멍 한 줄만 남겼고, 같은 바이저는 한 손으로 빠르게 올릴 수 있어 말 위에서 외침을 듣거나 명령을 내릴 때에는 곧장 얼굴이 드러났다. 토너먼트(특히 마상창시합 가운데 주스트)에서는 같은 아멧의 앞면에 그랜드 가드(grand guard)라는 두꺼운 덧판을 끼워, 정면에서 들어오는 창의 한 방을 더 두텁게 받아 냈다. 1450~1500년 사이의 이탈리아 전쟁(이탈리아 안의 도시국가 분쟁과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공)에서는 양 진영의 기사 모두가 같은 아멧을 머리에 얹고 부딪쳤다.
약점
아멧의 약점은 그 밀착의 짜임에서 곧장 비롯한다. 한 면의 판으로 머리와 목을 단단히 감싸기에 정면과 옆의 보호는 더할 나위 없으나, 그만큼 머리 안쪽의 더위와 땀이 빠져나갈 길이 좁아, 한여름의 긴 야전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같은 기사를 지치게 만들었다. 두 짝의 뺨 보호대가 턱 아래에서 한 점으로 잠긴 자리는, 같은 잠금이 풀려 버리면 한 면의 보호가 한꺼번에 무너지기 쉬워, 잠금쇠의 손질이 곧 같은 투구의 손질이었다. 좁은 시야 구멍은 화살과 칼끝의 한 방을 한 곳에 모이게 하여, 정면에서 정확히 같은 자리를 노리는 일격에는 도리어 약하였다. 무엇보다 한 벌의 아멧은 머리의 굴곡에 맞춰 별도의 손길로 다듬어야 했기에 값이 매우 비쌌고, 그래서 한동안 같은 투구는 귀족 기사의 한 자리에만 머물러 일반 보병의 손에는 잘 닿지 않았다.
문화·역사적 의미
아멧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무가와 기술이 한 자리에 모인 작품으로, 갑주를 한 점의 예술로 끌어올린 시대의 가장 또렷한 시각의 상징이다. 밀라노의 미사글리아(Missaglia) 공방은 한 세기 동안 같은 한 자리에서 유럽 각국의 군주와 기사에게 한 벌의 아멧을 다듬어 보냈고, 같은 도시의 네그롤리(Negroli) 가문은 16세기 중엽에 이르러 그리스 영웅과 짐승의 얼굴을 본뜬 화려한 의식용 아멧을 만들어 한 점의 조각 같은 투구를 빈, 마드리드, 파리의 궁정에 보냈다. 빈의 미술사 박물관(Hofjagd- und Rüstkammer), 마드리드의 왕립 갑주 박물관(Real Armería), 런던의 월리스 컬렉션과 영국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무기·갑주관 등 세계의 큰 갑주 박물관 어디에도 15~16세기 이탈리아 아멧의 명품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일상의 이탈리아어에서 'armetto'는 작은 투구를 가리키는 친근한 말로 쓰여, 같은 도구가 한 시대의 무가의 자랑으로 그치지 않고 시민의 입에까지 닿았음을 보여 준다.
대중문화 등장
아멧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와 15~16세기 서유럽을 다루는 영화·사극·게임의 기사 머리에 한결같이 얹혀 있다. 영화 《아이반호》(1982)와 《잔 다르크》(1999)의 기사들이 쓴 둥근 정수리의 투구, 그리고 《킹덤 오브 헤븐》(2005)의 후반에 보이는 한 벌의 판금 갑옷의 머리장비가 그 가까운 친척이며, BBC 사극 《울프 홀》과 《더 화이트 퀸》에서는 15세기 잉글랜드 장미 전쟁의 기사들이 같은 모양을 머리에 얹는다. 액션 RPG 《Kingdom Come: Deliverance》(15세기 보헤미아가 배경)와 《Mount & Blade II: Bannerlord》, 《For Honor》는 아멧을 이탈리아 식 무가의 상징으로 따로 두었고, 박물관의 마네킹과 영화의 도판 곳곳에서 같은 둥근 정수리와 두 짝의 뺨 보호대가 가장 또렷한 르네상스 기사의 인상을 만든다. 다만 영화는 흔히 아멧과 그 뒤를 이은 클로즈 헬멧을 한 데 묶어 그리는 일이 잦아, 두 모양의 가는 차이가 흐려지곤 한다.
재미있는 사실
- 아멧이라는 모양이 본격으로 자리잡은 자리는 1420~1440년대 밀라노의 미사글리아(Missaglia) 공방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많으며, 한 세기 동안 같은 공방의 솜씨가 유럽 각국 궁정의 한 벌 판금 갑옷의 머리장비를 한 가지 모양으로 끌어올렸다.
- 같은 시대 알프스 너머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챙이 있는 살라데와 턱가리개 베버(bevor)를 합한 한 줄이 따로 자라났기 때문에, 아멧은 한동안 '이탈리아 식 투구'로 비쳤고, 이 차이는 15세기 유럽 기사 문화의 남북 두 갈래를 가장 또렷이 보여 준다.
- 16세기 중엽 밀라노의 네그롤리(Negroli) 가문은 그리스 영웅과 짐승의 얼굴을 본뜬 의식용 아멧을 만들어 빈, 마드리드, 파리의 궁정에 보냈고, 그 가운데 다수는 오늘까지 빈의 미술사 박물관과 마드리드의 왕립 갑주 박물관에 남아 르네상스 갑주의 가장 화려한 자리를 채우고 있다.